2007년 11월 17일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어제 수능이 있었던 날이었다. 제대로 된 통과의례라고 보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듣기평가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국가적으로 비행기도 뜨지 못하게 만드는 대단한 연례행사임은 틀림없다.개인이 쌓아온 노력과 의지를 짧은 하룻동안 모두 쏟아내고 오는 길이 그렇게 시원섭섭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허탈감, 공허함,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2003년도 첫번째 수능을 보고 돌아온 날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능 보기 전에는 이런 긴장감을 어떻게 눌러왔을까 의문이 들 정도의 씁쓸한 공허감이 온몸을 지배하고 놔주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반대로 04년 두번째 수능을 볼 땐 그 반대로 시험을 보기도 전에 개인의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있는 것인지 그날따라 왜 그렇게 절실히 느껴지던지 2시간도 못 자고 시험장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던 아찔한 기억도.
수능 자체는 앞으로 펼쳐진 온갖 단계에 딸려오는 어려움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수능만을 보고 달려왔던 어린 아이들에게 처음 다가오는 '목표의 종말'과 '새로운 목표의 탐색'이라는 강박이 얼마나 가혹한지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취와 절망은 반복되기 마련이다.
세계의 끝이라고 여겨졌던 수평선도 훌쩍 뛰어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공간이라고 여겨졌던 우주 공간까지 나아가는 인간의 끝없는 움직임은 '죽음'이라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더욱 불타오르기도 하고 혹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어둠의 철로를 따라가기도 한다. '나사니엘 호손'의 단편들은 인간의 자신만만하고 건방진 외적 모습과는 달리 내적으로 깊숙이 숨어있는 어두운 두려움이라는 본능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 일깨워준다. 12편의 단편들은 다 음습한 기운을 내뿜는데, 그렇게 미국문학에 조예가 없는 나로서는 이 글들의 독특하고 환상적인(네거티브하게) 내용과 이를 끌고 나가는 리얼한 묘사 그리고 무언간에 도취된 듯한 긴 문장들이 애드가 앨런 포와는 혹시 뭔가 같은 기류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궁금해질 정도였다.
책을 읽으면서 어둠과 안개가 공존하는 초새벽의 관목림에 의기양양하게 들어가서는 결국 길을 잃어버리고 검은 안개 속에 나 자신까지 잃어버린다...... 는 느낌을 받았다. 번역자가 호흡이 길고 유려한 문장들의 흥을 살리기 위해 번역하면서 문장을 똑같이 길게 늘여놓았기 때문에 같은 페이지에서 걸음을 되풀이해야 했던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끝없는 욕망과 자신에 대한 과신으로 어느샌가 찾아오는 좌절의 낭떠러지 앞에서 쉽게 멈추지 못하는 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자유 의지가 강한 나머지 자신의 발목을 살며시 움켜잡는 삐딱한 운명의 질투조차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치료약이 될지도 모르겠다.
.... 시인이든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가든 아름다움을 내면적으로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후딱 사라져사는 그 신비를 그의 영적인 영역의 경계 너머까지 쫓아가서 그 가녀린 신비를 육체적인 힘으로 움켜쥐어 결국 찌그러뜨려야만 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들의 풍요로운 환영을 만족스럽게 재현하지 못해서 더 흐리고 더 희미한 아름다움 속에 이 세계를 장식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시인들과 화가들이 그랬듯이 오웬 워랜드도 그의 생각을 외적인 실체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中
.....그 젊은이의 성격의 비밀은 높고 추상적인 야망에 있었다. 그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무덤 속에서 잊혀지고 말 삶은 참을수 없었다. 간절한 욕구는 희망으로 변하고 오래 간직해 온 그 희망은 하나의 확신으로 바뀐 것이었다. 즉 후세 사람들이 과거의 어둠을 뒤돌아보게 될 때, 그들의 하찮은 영광들이 사라져갈 때 더욱 빛나는 자신의 밝은 발자취를 추적해서 결국 한 재능 있는 인간이 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일 없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자신의 여로를 마치고 갔음을 밝혀주게 될 것이라고... '야망이 큰 손님' 中
..... 운명은 우리를 그처럼 어긋나게 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또한 열정은 제 마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왈칵 달겨들면서도 정작 적절한 상황이 그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때에는 뒤에서 미적거리면서 게으름을 피운다..... '라파치니의 딸' 中
..... '그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게 뭡니까?' .................... '마음 딴곳에서 자란 것이 아니오 그건! 인간에 대한 우애와 시에 대한 존경의 생각을 물리쳐 이기고 자신의 강력한 요구에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그런 지적 죄악이 바로 그것이오. 영원한 고뇌의 응보를 받아 마땅한 유일한 죄악이지! 다시 또 그렇게 된다 해도 난 그 죄를 거침없이 범할 것이오. 그리고 그 응보를 당당히 받아들일 것이오! ........... '이선 브랜드' 中
# by | 2007/11/17 16:10 | Reading | 트랙백 | 덧글(3)





